땅이 뜨겁게 달구어지는 한 여름의 밤은 유독 짙게 몸의 감각을 두드린다. 반짝이는 하늘의 별과 싱그러운 풀숲의 향기 틈에서 무수한 개체들이 부대끼며 살아간다. 이승희는 이러한 풍경 아래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주고받는 실재적인 힘의 교환을 발견하고 이를 기묘한 어둠과 우주의 장면으로 옮겨낸다. 작가는 개인전 《End of Summer》에서 여러 문화를 거쳐 전해져 온 개에 얽힌 신화와 설화적 요소를 빌어 초현실적인 순간을 그려내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한 여름에 뜨는 개의 별자리 시리우스를 보며 다가올 재앙을 점치기도 하고, 그들을 인간과 영적으로 상통하는 존재로서 삶의 시작과 끝을 안내하는 길잡이로 여기기도 했다. 지금 여기, 이승희의 손에서 태어나는 개의 이미지들은 또 한 번 인류의 향방을 암시하는 예언자이자 그들의 삶을 수호하는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작가는 비인간적 개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에서 그들과 일종의 신호를 교환한다고 말한다. 개가 먹다 흘린 사료 조각들 사이에서 별이 듬성듬성 박힌 밤하늘의 이야기를 떠올리거나 개 꼬리의 빠른 움직임에서 사랑과 믿음의 메시지를 수신한다. 이렇듯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의 지류들은 작가의 조형적 순발력, 문화적 참조들과 결합하여 본 적 없는 형태로 발전한다. 여기에는 미래를 점치는 타로 카드, 소원을 비는 해우소, 별자리 설화, 그리스 신화 등의 소재가 동원되는데, 이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초월적 차원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작가가 짜놓은 이야기의 얼개 속에서 인간과 신, 동물은 초현실적인 방법으로 각자의 실체를 인식하고 만난다.
전시장 아래층에 위치한 세 폭의 그림
작가는 현실의 표면에서 쉽게 포착되지 않거나 언어적으로 미처 규정되지 않았던 존재와 인간의 공존 가능성을 용감하고 끈질기게 탐험한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마음을 읽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 또 그들과 확장된 의사소통의 방법을 도모하는 일은 그에게 있어 지속되는 삶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다. 유연한 형식과 상상력이 덧대어지며 구현되는 이미지는 굳어있던 우리의 판단 준거를 녹여내고 보다 열린 태도의 대화를 요청한다. 이승희가 제안하는 여정이 고정관념과 편향적 기준을 넘어 다양한 객체들 사이의 대안적 연대로 이어질 수 있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